주옥같은 설레발
유럽이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에 굉장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 본문
원래도 선진국들의 리쇼어링은 예견된 일이었는데, 현재 트렌드가 그 추세를 더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 중요 물자 생산이 동아시아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점 때문인데, 이 지역에서 점점 중국의 패악질 때문에 안보 위기가 심화되니 더이상 이 지역에 생산을 의존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마치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석유 파동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경제 위기가 발생하는 것처럼요.
게다가 중국발 동아시아 안보 위기 말고도, 코로나나 미국 텍사스 한파 등 외부 변수가 생겨서 자신들의 산업까지 피해를 보는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가장 대표적으로 대규모 경기 부양책과 더불어 각종 첨단 산업의 자국 내 생산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유럽은 주로 전기차,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의 유럽 내 생산 증가에 목표를 두는 것 같습니다.
1. 반도체
목표 : 180조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유럽의 글로벌 반도체 생산량 점유율 20%로 끌어올리기
EU 내에도 인피니온과 NXP(차량용 반도체), ASML(EUV) 등의 기업이 있지만 유럽 수요의 대부분을 충당하기는 역부족인 상황에서 미국처럼 주로 TSMC나 삼성전자 등의 파운드리 공장 유치를 염두하는 거 같네요. 특히 5나노 이하 미세공정 반도체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유럽 내부 생산에 대한 필요성이 크다고 느끼고 있구요.
다만 이미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공장을 증설하고 있고, 삼성은 오스틴에 공장 증설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라 유럽을 택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럽의 반도체 수요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면 모를까...
2. 전기차 배터리
목표 : 2025년까지 유럽 내 600만대의 전기차에 공급할 배터리를 대부분 유럽 생산에서 조달 / 2030년까지 보급될 친환경 차량 3,000만대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90%를 유럽에서 생산
전기차 배터리는 특히 유럽의 고민이 가장 큰 분야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유럽은 전기차 등록 133만대로 처음으로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으로 떠올랐고, 올해도 약 190만대로 무난하게 세계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난해 삼성SDI 매출도 유럽 매출이 3.8조원으로 중국의 2.9조원을 앞질러, 삼성 SDI 사상 처음으로 유럽 매출>중국 매출이 됐습니다. 유럽 전기차 시장 규모가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그런데 전기차는 폭스바겐, 볼보 등 완성차 업체들이 많지만, 정작 배터리는 유럽 기업이 아닌 한중일 등 해외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2021년 1~2월 기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한중일이 사실상 시장을 독접하고 있습니다. 세계 배터리 제조 기업 탑10이 전부 한중일인데, 중국 5개사(CATL, BYD, CALB, AESC, 궈시안), 한국은 3개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일본은 2개사(파나소닉,PEVE)였고, 특히 중국 CATL은 세계 1위로 31.7%의 점유율이죠. 이 지역에서 중국발 안보 불안이 심화되면 유럽의 전기차 산업에도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을 보유하고도 배터리 생산이 전부 한중일 기업들에게 몰려 있다는 점은 자연스레 유럽의 배터리 산업 육성 열망으로 이어집니다.
투자는 막대한데, 2019년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 투자액은 중국의 3배인 약 80조원이었으며, 투자 계획은 10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현재 유럽 내에서만 27개의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이 있으며, 특히 폭스바겐은 20조원을 투자하여 6개의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습니다.
배터리 전용 스타트업도 등장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스웨덴의 노스볼트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전기차 배터리 스타트업입니다. BMW와의 15조원 규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수주했으며, 유럽 배터리 시장 점유율 25%를 목표로 합니다. 최근 이 노스볼트로 국내 인력들도 대거 넘어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영국 브리티시볼트는 4조원을 들여 공장을 건설하고 2030년까지 영국과 유럽 전역에 150~200GWh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할 것을 목표로 하는 중입니다.
프랑스 오토모티브셀스는 6.6조원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유럽은 꼭 토종 기업의 육성에만 힘쓴다기보다는 외국 기업이라도 최대한 자국 내 생산을 늘리는 데 집중하는, 말 그대로 "유럽 지역에서의 배터리 생산"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가 합니다. 당장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도 유럽 기업과의 장기 물량 공급을 체결했고, 삼성SDI도 리튬 이온 배터리 관련 4개의 상표를 유럽에 등록했지요.
블룸버그는 이러한 유럽의 투자 노력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는 거 같더군요. 2030년 "세계에서 유럽 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 점유율"이 현재 7%에서 무려 31%까지 오를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같은 기간 중국은 82%->59%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한국은 1% 정도입니다.
3. 영국의 전기차 진출 선언
한편 브렉시트를 한 영국도 미래 산업으로 전기차 투자에 공들이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을 선언한 가운데, 재규어랜드로버도 자사 브랜드를 전기차로 전환할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영국 내에서도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도 친환경 지원 사업비 약 4조원에서 1조 5천억원 가량을 영국 대표 전기차 배터리 기업이자 위에서 언급한 브리티시볼트에 지원하고, 잉글랜드 중부 웨스트미들랜즈에 있는 코벤트리 공항을 배터리 제조용 기가팩토리로 개조할 계획이며, 전기차 이행을 위해 5억 파운드를 지원하는 등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요즘 조금씩 유명세를 얻고 있는 스타트업 어라이벌도 영국 기업이지요.
잃어버린 제조업을 되찾는 것은 영국의 오랜 염원 중에 하나였습니다. 특히 한때 전통의 맹주로 군림했던 자동차 산업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 향수가 클 겁니다. 전기차 시대에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국내 언론들은 유럽의 대규모 투자 소식에 보통 우리가 큰 위기에 빠졌다며, 매우 호들갑을 떨고 있더군요. 하지만 업계에서 보는 시각은 기자들이랑 다르겠죠. 확실한 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비록 지금은 우리가 배터리 기술에서 유럽보다 매우 앞선다지만, 유럽은 한때 세계 중공업과 제조업의 역사를 선도한 베테랑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에 있는 시기가 곧 가장 위험한 시기죠. 우수한 기술력과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로 최정상에 위치하던 기업들이 몰락하는 사례는 숱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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