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옥같은 설레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사태 본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의 흰 유니폼을 입고 전설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그런데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보면...
우선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남미 시절 계약에 대해서 먼저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리버 플레이트에 소속된
선수였다(CA 우라칸에서 뛴 것은 임대). 하지만 이 시기 아르헨티나는 경제적 혼란에 직면했고, 선수들의 주급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도 예외는 아니었고, 주급을 지급하지 못하는 리버 플레이트를 탈퇴했다.
그때 디 스테파노를 영입한 것이 한참 경제 성장과 군사 정권의 지지와 함께 선수를 끌어모으고 있던 콜롬비아 리그의 CD 로스
미요나리오스였다. 단, 계약이 완전히 깨진 것도 아니고 로스 미요나리오스 이적 과정에서 이적료가 지불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리버
플레이트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에 대한 적어도 상당 부분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다. 로스 미요나리오스 이적 과정을 임대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둘 모두에게 확실한 권리가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중 계약이고, 좋게 말하면 양쪽 모두 부분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로스 미요나리오스에서 맹활약을 했고, 심지어 콜롬비아 축구 협회의
요청으로 콜롬비아의 국적을 취득해 콜롬비아 국가 대표로까지 발탁되었다. 하지만, 콜롬비아 축구 협회는 FIFA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고, 공식적인 A 매치에서 뛸 수도 없었다.
그런데 콜롬비아 리그는 급하게 형성된 것인 만큼 급격하게 몰락했다. 1950년대 초반 콜롬비아의 경제는 완전히 무너졌고, 로스
미요나리오스도 유럽 순회를 하면서 돈 벌이를 하러 다녀야 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로서도 콜롬비아를 떠날 필요가 있었다. 그때
로스 미요나리오스가 앵벌이를 다닌 곳이 스페인이었고,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활약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당시 스페인의 상황은 라슬로 쿠발라라는 슈퍼 스타를 등에 업은 바르셀로나가 독주하는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까지 바르셀로나에 영입되면 독주 체제가 굳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양쪽 모두에게 있었다.
이때 바르셀로나는 남미 상황에 정통했던 변호사이자 민족주의자였던 카탈루냐인 라몬 트리아스 파르가스를 리버 플레이트에 파견하여 이적
협상을 완료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로스 미요나리오스와 바르셀로나의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라몬 트리아스
파르가스의 주장에 따르면 이 협상이 깨진 것은 바르셀로나의 내부 문제에 의한 것이었다. 역시 콜롬비아에 파견되었던 바르셀로나의
이사 주젭 사미티에르는 당시 콜롬비아에 있던 카탈루냐 인이자 로스 미요나리오스의 라이벌 구단 '산타 페'의 임원이었던 후안
부스케츠 바로의 도움을 얻었는데, 바로는 협상을 진행하는 것보다 방해하는 데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후안
부스케츠는 로스 미요나리오스와의 협상을 거의 하지 않았고, 로스 미요나리오스에게는 통보도 없이 디 스테파노를 스페인으로 데려와
버렸다. 이 사건은 당연히 로스 미요나리오스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결국 로스 미요나리오스와 바르셀로나 사이의 협상은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여하튼 바르셀로나는 리버 플레이트와 담판을 지었고, 일단 유럽으로 떠나고 싶었던 디 스테파노는 무작정 스페인으로 날아왔다. 문제는
바르셀로나와 계약을 한 리버 플레이트 역시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쓰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스 미요나리오스의 허락을 받으면
허용함'이라는 조항을 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협상을 허락한 FIFA 역시 바르셀로나가 로스 미요나리오스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모르고 허락을 한 것이다. 로스 미요나리오스는 이런 상황 전개에서 당연히 반발하였다.
결국 바르셀로나와 로스 미요나리오스 사이의 협상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협상의 방해물이 등장했으니 바로 바르셀로나 회장인 엔리크
마르티 카레토였다. 카레토는 디 스테파노 이적에 필요한 자금에 제약을 걸기 시작했다. 파르가스에 의하면 이 협상 과정에서 카레토
회장이 미요나리오스에 지불할 의사가 있었던 돈은 1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 돈은 바르셀로나의 보드진이 허용한 2만 달러의
절반이었으며, 로스 미요나리오스가 요구한 이적료 4만 달러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게다가 디 스테파노가 개인적으로 지고 있던
빚 5천 달러도 있었다. 파르가스는 이 차이를 1만 달러와 옵션(친선 경기 개최 수익금 등)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카레토는
1만 달러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면서 카레토를 비판했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외부 압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으나
확실하진 않다. 한편 그러는 사이에 레알 마드리드는 로스 미요나리오스와 협상을 해서 이적 동의를 받아내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이중 계약이 된 것이다.
이제 공은 스페인 축구 협회로 넘어갔다. 당시 축구 협회였던 스페인 축구 연합과 정부의 국민 스포츠 당은 일단 더 이상의 외국인
협상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 상황에서 바르셀로나가 로스 미요나리오스와, 레알 마드리드가 리버 플레이트와 협상을 하게 된다면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완벽한 이중 계약이 되고, 그 이후 전개는 누구도 해결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와 동시에 디
스테파노와 바르셀로나 사이에 이루어진 개인 계약을 무효로 처리했다. 바르셀로나와 디 스테파노의 계약을 인정한다는 것은 디
스테파노가 리버 플레이트 소속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고, 그건 복잡하게 꼬여 있는 계약을 결론 내린다는 것이었는데 국민 스포츠
당과 스페인 축구 연합이 모두 이걸 거부한 것이다. 이러면 디 스테파노 영입을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모두 못하게 되는
것인데, 당연히 두 팀 모두 반발하고 나섰다.
이제 다시 상황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스페인 축구 협회와 정부의 국민 스포츠 당, 리버 플레이트와 로스 미요나리오스, 그리고
FIFA와 콜롬비아 축구 협회가 뒤엉킨 어처구니없이 복잡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더구나 갑자기 잘만 뛰던 디 스테파노가 복잡한
상황에 자기도 당황했는지 좀 애매한 플레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비밀 협정을 맺고 태업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되지만, 이 시기의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에서는 디 스테파노를 자신들의 슈퍼 스타 쿠발라와 비교를 하면서 굳이
살 필요가 있겠느냐는 불평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 상황에서 국제적 판단이 2개 나왔는데 리버 플레이트가 소속된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가 바르셀로나가 정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승인한 사건과, 그제서야 바르셀로나가 로스 미요나리오스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FIFA가 이전의 결정을 파기하고 모든 책임을 스페인 축구 협회로 떠넘긴 것이다.
이렇게 꼬인 상황이 6개월이나 지속되면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협정을 맺었는데, 그 협정이 뭐냐 하면, '디 스테파노를 유벤투스로 이적시킨다는 것이었다.'
이에 다시 화들짝 놀란 것이 국민 스포츠 당과 스페인 축구 협회였다. 앞의 전개를 생각해보자. 당시 디 스테파노는 아르헨티나에서
맹활약을 해서 국가 대표로 활동하다가, 로스 미요나리오스에서 활동하면서 콜롬비아 국적을 따고 콜롬비아 국가 대표로 활동한 세계
최고의 선수이다. 당시는 이런 식의 국적 이동과 대표 팀 출장이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월드컵에 좋은 선수는 안 내보내려고
난리를 치는 경우도 있었는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뛰던 시절의 아르헨티나가 이 짓을 했다. 그러고도 소용이 없어서 결국
콜롬비아로 이동했지만. 따라서 디 스테파노가 유벤투스 선수가 된다면, 스페인 입장에서는 굴러 들어온 국가 대표 스트라이커를
이탈리아에 넘겨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것이 전대미문의 판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4년 동안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소유권을 공유하고, 각각 1년씩 번갈아 가면서 뛴다는 것이었다.
이 협정에 반발한 것은 FC 바르셀로나, 그 중에서도 바르셀로나의 팬들이었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이 협정을 프랑코 정부의 모략으로
보았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모독으로 인식했다. 또한 디 스테파노의 활약 역시 기대에 미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협상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였고, 바르셀로나는 돈을 받고 디 스테파노에 대한 권한을 레알 마드리드에 넘겨주었으며 카레토 회장을 포함한
임원들은 전원 사임했다. 카레토 회장이 디 스테파노를 마드리드에 보내고 사임했는지, 카레토 회장이 사임을 빙자한 파면이 된 다음에
결성된 임시 이사회가 디 스테파노를 마드리드에 이적시킨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매체마다 다르다. 여튼 거의 동시인 것은
확실하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는 로스 미요나리오스, 바르셀로나에 이어서 리버 플레이트에도 이적료를 지불하면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에 대한 이적 소동은 겨우 마무리된다.
본문에 적힌 과정도, 파르가스의 주장, 관련된 매체, 각 언어별 위키피디아, 소개되는 책자마다 조금씩 다 다르고, 도대체 중앙
스포츠 당과 스페인 축구 협회의 압박이 어느 단계에서 어떻게 미쳤는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극렬 카탈루냐 민족주의자인
파르가스는 협상 단계에서 바르셀로나 회장과 이사까지 방해만 했고 전 과정에서 압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하고 있지만
당사자의 주장이라서 좀 애매하다. 주장을 보면 '난 완벽하게 협상을 다 했는데 주변에서 방해만 해서 실패했다'는 전개이고, '악의
근원은 프랑코 정부'라는 식이다. 극렬 바르셀로나 팬들 중에서는 이 주장을 긍정하는 이들이 꽤 많지만 아무리 봐도 자기 실드
냄새가 강하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부족하다. 한편 바르셀로나와는 거리가 먼 측, 혹은 대놓고 레알 마드리드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바르셀로나 팬들이 이적 초기 디 스테파노의 활약이 기대에 못 미쳐서 디 스테파노를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후 디
스테파노 사태가 FC 바르셀로나에 대한 프랑코 정부의 훼방의 증거로 꼽히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쟁점화된 것도 있으니, 논란이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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